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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라이프] 그에겐 ‘괴기스러웠던’ 제주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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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빈인한 작성일20-06-08 21:02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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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移葬)과 벌초, 제주의 독특한 조상 모시기제주 용눈이오름과 그 주변에 자리한 무덤들. 제주 사람들은 봉분 주변에 산담을 쌓아 가축 등으로부터 봉분이 훼손되는 것을 막았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제공('하늘에서 바라본 기록, 제주'에서 발췌)
“조상님들, 이제 더 자주 뵐 수 있는 곳으로 모시쿠다. 편안히 주무시는 거 깨운덴 노여워말앙 오늘 저희들 예쁘게 봐줍써예”

윤달이 시작된 지난달 23일, 동이 막 튼 이른 새벽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어느 묘소에서 이장(移葬) 작업이 시작됐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남평 문씨 후손들이 윗대 조상을 가족 묘지로 모시기 위해 모였다. 정성스레 제를 올리고 파묘에 들어갔다.

문태정씨(65)는 “5대 현조부를 포함해 4기를 가족 묘지로 이장한다”며 “해야지 해야지 논의만 하다 이렇게 윤달에 모시게 됐다.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윤달이 시작된 지난 5월 23일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의 한 무덤가에서 이장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3년만의 윤달을 맞아 제주의 유일한 화장시설인 제주양지공원에는 하루 평균 100구의 개장유골 예약이 몰리면서 화장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정임 기자
3년 만에 윤달이 찾아오면서 제주 문중들이 바빠졌다. 가장 일이 늘어난 건 화장시설. 윤달이 시작된 지난 5월 23일부터 끝나는 6월 20일까지 제주 양지공원에 접수된 개장 유골 화장 예약 건수는 2900구에 이른다. 하루 100구꼴. 평상시 1일 15구 내외의 화장이 이뤄지는 것과 비교하면 윤달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제주의 이장 수요를 짐작해볼 수 있다.

제주의 유일한 화장터인 제주 양지공원의 1일 최대 화장 처리 건수가 100구인 것을 고려하면 올해 윤달에 미처 화장일을 잡지 못 해 개장을 하지 못 한 집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반영하듯 양지공원 온라인 윤달 화장 접수는 개시 1시간 만에 연일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윤달 개장 유골 화장 건수는 2014년 1829구, 2017년 2004구, 올해 2900구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제주 전통 벌초 날인 음력 8월 1일을 하루 앞두고 제주시 공설공원묘지에서 한 가족이 조상 묘를 깨끗이 단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의 벌초 풍경
최근까지도 제주에는 학교마다 ‘벌초 방학’이란 게 있었다. 음력 8월 1일을 전후해 성묘하는 제주지역 벌초 풍습에 맞춰 도내 대부분 초등학교가 하루 임시방학을 했다. 집안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벌초하는 날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해 효행사상을 고취한다는 취지였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제주에서 벌초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추석 전에 소분 안 하민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추석 전에 벌초를 안 하면 조상이 덤불을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추석 당일 선산을 찾아 성묘하는 풍습이 없는 제주에서는 벌초가 집안의 가장 중요한 의례였다.

제주에서는 벌초 당일에는 친척들이 한 데 모여 조상의 묘를 찾아다니는 문중 벌초를 한다. ‘모둠 벌초’라고도 한다. 부계 8촌 이내의 친척들이 모여 가장 웃조상의 묘부터 벌초해나가는데, 무덤이 가까이 있으면 하루에 끝나지만 여러 곳에 흩어져 있으면 2~3일이 걸리기도 한다.

모둠 벌초가 끝난 뒤에는 ‘가지 벌초’를 한다. 집안에서 차례와 기제사를 모시는 직계 조상에 대한 벌초다. ‘개인 벌초’ ‘가족 벌초’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벌초할 때 먼 곳을 걸어서 묘 주변 풀을 낫으로 일일이 베어냈기 때문에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로 이동하고 예초기를 쓰기 때문에 벌초에 걸리는 시간이 전보다 많이 줄었다. 요즘은 직장 문제로 음력 8월 초하루에 맞춰 모이기가 힘들어서 직전 일요일에 모둠 벌초를 하고, 당일 혹은 그 전날에 가지 벌초를 하는 경우가 많다.

“괴기스러운 제주의 무덤”
제주의 무덤은 매우 독특한 형태를 띤다. 산담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돌담이 어떤 장소에 사용되는가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초가의 외벽에 쌓은 것은 ‘축담’,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따라 쌓은 담은 ‘올렛담’, 밭과 밭의 경계에 쌓은 담은 ‘밭담’으로 부르는 식이다. 산담은 무덤 주위에 네모지게 쌓은 담인데 돌이 많은 제주지역의 특징을 반영한다.

제주 사람들이 봉분 주위에 돌담을 에둘러 쌓은 것은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말이나 소의 방목으로 인한 분묘 훼손을 막아야 했고, 거센 바람으로부터 무덤을 보호해야 했다. 제주에서는 이른 봄 진드기를 구제하기 위해 방목지대에 불을 놓았다. 산담은 방화의 피해를 막아주는 기능도 했다.

제주의 무덤은 과수원이나 오름 등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존하는 제주 특유의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제주지역 산담에는 죽어서도 망자의 혼령이 집으로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입문(시문)을 두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문이 봉분 오른쪽에 있으면 남자의 무덤이고, 왼쪽에 있으면 여자의 무덤을 나타낸다.

산담 안에는 망자를 지키는 문인석이나 동자석을 두기도 했다. 주로 동자석이 많았다. 동자는 망자의 심부름꾼이다. 일반인에 의해 제작되다 보니 모양이나 특징이 제각각 개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150년 전 제주도를 탐사했던 영국 제국주의 함선 사마랑호의 군의관 애서 애덤스(1820~1878)는 ‘켈파트 섬 박물학’이란 책에서 제주도와 제주의 무덤을 본 소감을 이렇게 기술했다.

‘섬의 표면은 온통 거대한 바위와 식물들이 자라는 뜬돌들로 덮여 있었다. 한편으론 수많은 돌로 낮고 단단하게 축조된 사각형의 울타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두 사람의 봉분이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본 가장 괴기스러운 무덤 형태로 남아 있다.’

애서 애덤스에게 익숙한 무덤 양식은 평장 후 묘비를 세우는 기독교적인 형태였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시아의 어느 작은 섬에서 만난, 둥그렇게 솟은 봉분과 봉분을 소중하게 감싼 검은 사각 담은 영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봉분을 산담으로 두른 무덤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독특한 양식이다.

3년만의 윤달이 낀 해를 맞아 제주의 남평 문씨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이장하며 비석을 옮기고 있다. 문정임 기자
오래전 누군가의 삶이 담긴 비문
제주의 무덤에서는 비석도 독특한 형태를 지닌다. 제주의 비석은 육지와 달리 화산섬 제주의 돌을 다듬어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가치를 높이 살 만하다. 육지의 비석은 비석의 몸체와 지붕돌이 분리된 형태이지만, 제주의 비석은 처음부터 몸체와 지붕을 하나로 이어지게 깎아 만든 경우가 많다.

비석에는 가족사, 사회사, 직함, 지명 등 망자는 물론 당시 사회상까지 짐작해볼 여러 단서가 새겨져 있다. 족보에는 기껏해야 생몰년이나 묘지 위치 정도만 적혀 있지만 비석은 주인공의 행적까지 좀 더 소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4·3때 억울하게 사망한 조상의 사연이나 제주로 유배 온 진사를 사랑한 제주 기생의 삶, 육지에서 온 아버지가 제주에 자식을 낳고 가면서 그 아들이 제주에 없던 새로운 성씨의 뿌리가 되는 경우도 비석에 남아 오랜 세월 후대에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처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주 무덤의 소중한 석물들은 도굴이 돼 육지부로 불법 반출되거나, 후손들이 이장하는 과정에서 미처 옮기지 못해 산속에 방치되며 점차 사라지고 있다.

비문(碑文)에는 망자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 지명과 직함은 물론 고인의 가족사를 통해서도 당시의 사회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문정임 기자
변하는 것과 아직은 변하지 않은 것들
제주에서 이장(移葬)이 늘어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면서 집집마다 벌초할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흰머리 성성한 70대가 예초기를 잡아야 하니 힘든 건 둘째치고 이후가 걱정이다.

육지부와 마찬가지로 제주의 장묘문화도 계속 변하고 있다. 비용과 관리의 문제로 이제는 매장보다 화장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전통문화가 희석되는 상황에서도 벌초를 중요시하는 제주의 문화는 여전히 제주인의 일상에 강하게 살아 있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산 자의 생일보다 죽은 자의 제사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척박하고 매서운 섬의 땅에서 힘들고 고되게 가족의 생계를 잇노라면 자연스레 살아있는 가족의 생일을 챙기는 일보다 신이나 조상에게 기원하고 기대는 일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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